● 1월21일(22일째) - "바람과 해류로 독도접안 포기. 오키섬의 불빛이 보인다"
08:45 독도로 갈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여의치 못하다.나의 판단과 결정은 왜 이리 힘들까.
09:25 나라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이란 나라? 이 동해 한가운데서 생각한다. 독도가 옆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일본이 우리를 체크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저들은 우리를 무엇으로 여기고 있을까.
09:45 좌표는 점점 밑으로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불리한 상황이다. 어쩌면 예견된 것이겠지만 조치를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대원들은 아무 말없다. 하늘은 맑은데 바람과 파도는 왜 이러는가? 이런 경우 부적같은 것이 없을까?
15:20 그동안 흘러온 해도를 보았다. 참으로 동해를 헤집고 다녔다. 이 광풍과 파도에 견딜 수 있다는 뗏목에 감사할 뿐이다. 독도. 저 조그만 섬이 위안을 갖게 한다. 오키로 가는 최후의 저지선. 북서풍을 차단하는 해류의 흐름이 있다.
16:10 추위로 바다의 즐거움은 덜하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시작하자. 그래야만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다를 마음껏 안고 싶던 내게 부상은 30세의 마지막을 정리시키고 있다. 빨리 탈출하고 싶다. 갑자기 눈보라가 치고, 주위는 이내 깜깜하다. 파도가 또다시 발광을 한다. 방황했던 30대. 벌거벗고, 갖은 땟자국을 이 바다에 던지고 싶다. 사랑했던 30대. 잘 가시오.
16:22 나침판이 동북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해류 편승 조짐.
21:15 해류에 밀려 남진하는 방향이 동진하고 있다. 앞으로 야기될 많은 문제들이 불안하게 다가오고 있다. 간혹 오키섬에서 보이는 섬광이 번뜩인다.
독도접안을 시도했던 탐사대는 결국 이를 포기하고 최종 목적지를 오키섬에서 가까운 본토 ‘쓰루가’ (敦賀)항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오키제도 도고섬을 1차 접안지로 정했다.
● 1월22일(23일째) - "이순신 장군에게 빌었다. 지금은 저들에게 갈 수 없노라고"
08:00 햇빛이 너무 좋다. 육지 실루엣이 보인다. 시집간 딸이 온 기분이다.
08:50 사과에 비상식을 먹었다. 파도는 너울거리고 바람도 잔다. 또 걱정이다.
10:00 교신. 가는 방향으로 진행하라. 냉정을 찾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23일까지 휴가.
15:00 초조한 시간들.
18:00 파도와 바람이 치고 있다. 일본에 가서 수속을 하느니 독도로 항해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오키섬 깊숙이 들어왔다.
22:20 아무리 최선을 다하지만 바람도, 해류도 따라주지 않는다. 무엇으로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까. 아픈 왼손으로 악다귀를 쓰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들. 모든 것은 동물적 생존의식, 약자에게 가해지는 처참함이 내 앞에 놓여있다.
23:20 현재 돛을 내리고 해류를 타고 있다. 도고란 섬을 이야기하며 도고헤이이치로(근대 일본 해군의 국민적 영웅, 충무공 전법을 연구해 1905년 러일전쟁시 대마도 해전서 러시아 함대를 궤멸시킴)를 이야기했다. 이순신에게 빌었다. 지금은 저들에게 갈 수 없노라고. 현재 나침판은 북서를 가리키고 있다. 이상하다.
당초 대원들은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일본측에 구조를 요청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들은 독도는 우리 땅임을 알리기 위해 각종 역사적 사료를 내세우며 일본에 대항해 온 독도의 파수꾼 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일본 상륙을 기정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일본측의 조사에 대비한듯 항해일기에 낙서하듯 이렇게 적어 놓았다. ‘학술탐사로 밀려왔다. 한국으로 다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
● 1월23일(24일째) - "순시선이 왔다. 걱정할 필요없다."
07:00 장비 고장과 소모가 많다. 눈 앞에는 등대가 보이고 항로는 오키섬으로 들어서고 있다.
09:30 버너 고장으로 가까스로 밥을 하는데 가스가 3통밖에 없다.
10:00 뗏목이 종횡무진이다.
11:05 다시 공격할 시점을 잡고 있다. 북서풍이 미약해질 시기를 보고 있는 것이다.
12:00 아침은 비상식 귤. 어디선가 일본측 교신이 비상주파수로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 우리의 뱃길을 따라오고 있다고 함.
13:35 모든 것이 아쉬움 투성이다. 속이 타서 담배를 하나 물었다. 지금은 나의 신체와 정신이 위축되어 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16:00 바다가 거칠어진다. 배가 섬으로 밀려가고 있다. 우선 섬으로 피신을 했으면 한다. 교신이 빨리 되길 바란다. 우리 탐험대가 맞은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협조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도고에 들어감. 도고에 잠시 머문다. 일본영사관에 협조요청. 휘발유 급유. 8시 교신.
(장철수 대장이 오후4시 무렵에 작성한 일기) 나라에 짐이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더욱이 오늘 한·일어업협정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다는데 그들의 속셈이 드러났다고 보아진다. 무엇보다도 내가 의연해지고 싶다. 미래와 현재의 공존과 조화. 바다를 통한 인류의 평화 모색. 청년에게 꿈과 지혜를 주고 싶다. 탐험정신. 발해의 정신.
16:16 도와달라. 도고섬 8km 전방이다. 이대로 가면 섬에 충돌할 것 같다.
19:05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급박해지고 있다.
20:08 도고섬과의 거리가 2km 남았다.
20:25 40분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게 하는가. MAY DAY를 외친 후….
20:50 순시선과 연락이 닿았다.
20:56 (탐사대:)순시선이 왔다. 걱정할 필요없다.(지원팀:)순시선이 온 것이 사실이냐. (탐사대:)예. 맞습니다. 이제 준비해야 하니 교신을 중단해야 하겠습니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한국 해경으로부터 뗏목 구조를 요청하는 팩스를 받은 것은 오후 6시30분. 해상 보안청은 즉시 뗏목 위치 파악에 나서 오키섬 앞 5마일 지점에서 표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높은 파도로 사고를 염려한 해상보안청은 일본 도고섬의 ‘사이고(西鄕)’로 예인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 해상청 브리핑에 의하면 밤 8시30분쯤 순시선은 통신교신이 가능할 만큼 뗏목 가까이 접근했다. 순시선의 레이더에 잡힌 뗏목은 점점 섬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순시선 사령탑은 대원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닻을 내려라”고 요구했다. 당시 뗏목과 섬과의 거리는 1백50여m에 불과했다.
구조에 나선 일본순시선이 뗏목의 불빛을 처음 발견한 시각은 밤 9시쯤. 무선지원팀과 마지막 교신이 오간지 10여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순시선에서는 조명탄을 발사했으나 파도 속에 묻혀 요동치는 뗏목의 위치는 좀체 확인이 되지 않았다. 해상보안청에서는 해상 자위대에 헬기 지원을 요청했다. 헬기는 24일 새벽 1시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1월24일(25일째) - "1,2차 구조헬기 연료부족으로 회항, 뗏목에 묶여있는 시신"
출동한 헬기는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현장을 수색했지만 강풍·눈보라가 몰아치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위치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첫번째, 두번째 헬기는 연료 부족으로 회항하고 말았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순시선 레이더에는 뗏목이 포착됐고 쌍안경으로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번째 헬기가 도착했을 때 이미 뗏목은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 새벽부터 헬기는 다시 수색에 나섰다. 그리고 아침 6시쯤 도고섬 서북쪽 후쿠우라(福浦)항 남쪽반도 해변에 좌초해 있는 뗏목을 발견했다. 육지에서 1백m 떨어진 바다 위에는 2명의 대원이 엎드린 채 표류하고 있었다. 또 1명은 뗏목에 몸을 묶은 채 파도를 따라 요동치고 있었다.
헬기에서 내려간 다이버는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던 2명 가운데 이용호 대원을 먼저 구조했지만 숨지고 말았다. 그 사이에 또 한명은 파도에 밀려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육지로부터 불과 수십m 거리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바로 임현규 대원이었다. 뗏목에 묶여 있던 사람은 이덕영 선장. 그러나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흔들리는 뗏목에는 돛대에 묶인 그의 발목만 남아 있었다. 발해 항로 재현의 꿈은 이렇게 파도 속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