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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1300호 촬영담당 이용호

이 용 호

발해1300호 촬영담당

이용호 촬영담당은

1963.12.7 경남 마산에서 태어남.

1982. 경남 진해상고 졸업.

1984.3 창원대학교 미술학과 입학.

1989. 경남 미술대전 공예부분 최우수상 수상.

1990. 경남 미술대전 공예부분 우수상, 가야 미술대전 시각공예부분 특선,

          전국 대학생 미술대전 은상, 환경보전협회 포스터 공모전 은상.

1991. 창원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한국 현대미술 대상전 입선.

1993. 봉림회전(창원,마산)

1996. 15회 창원시민의 날 기념행사 총괄기획(디자인팀장)

1997. 바다의 날 기념 독도해상 선상세미너 참가

1997.12 발해1300호 촬영담당

1998.1 발해항로 뗏목탐사 도중 사망

이용호(당시 35세) 씨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분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청년 문화'를 꽃피워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나라'가 많이 늙었다. 늙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늙음은 그 연륜을 후손들에게 자양분으로 내어주고 스러져야 한다. 스러질 때 스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꼴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꼴이다. 스러질 때도 아닌데 스러질 것 같은 것이 또한 우리 '나라' 사람들의 꼴이다.

그러니 '나라'가 늙었다. 늙으신네들은 '어르신'이 되지 못하고 '어린 아이'처럼 다툰다. 젊은네들은 푸른 기상을 갖지 못하고 싹이 노랗다. 그래픽디자이너였던 이용호 씨가 그리고자 했던 그래픽은 푸른 정신이었다.

푸른 '나라', 푸른 기상의 '청년'이 그가 디자인하고 싶었던 '나라'와 '나'의 모습이었다. 이용호 씨와 술을 마시고 다투었던 일이 있었다. 그 푸르름을 이루는 방법론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나는 학문과 교육을 통한 개개인의 각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용호 씨는 '청년 문화 운동'의 방식으로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돌이켜보건대, 양자는 상보적이어야 한다. 이론과 실천이랄 수 있다. 우리의 바람은 '푸르른 데'서 어울려 놀았다. 이용호 씨가 찾고자 했던 발해는 푸르른 나라였고, 푸른 기상이었다.
(위의 글은 발해1300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소식지 '철수생각' 5호에 실린 경기대학교 박수경 교수의 글이다.)

촬영을 맡았던 이용호씨(우리 미술연구회·35)는 미대 출신의 그래픽아티스트. 84년 창원대 미술학과에 입학한 이후 89년 경남미술대전 공예부문 최우수 수상을 비롯해 시각·공예 부분에서 수차례 상을 받는 등 경남 미술계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형 정화씨(38)는 “바다를 좋아해 바다를 카메라나 화폭에 담는 것을 즐겼다”고 말했다.

그래서 바다 관련 행사가 열리면 빠지지 않고 ‘주최측’으로 참여하는 열성을 보였다. 제1회 바다의 날 기념으로 96년 5월31일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열린 국제요트대회(부산~독도~울릉도 구간) 때도 사진촬영을 맡았다. 이 행사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장철수 대장. 장대장이 책임자였던 21세기 바다연구소가 바로 이 행사의 주최자였던 것이다.

그는 지난해(97년) 제2회 바다의 날 기념행사로 열린 독도해상 선상세미나에 다시 장대장과 함께 참석한 것을 계기로 이번 탐사에 참여할 뜻을 굳혔다. 장대장과 함께 8개월여 동안 탐사 실무준비를 도맡아 했다. 항해 중 오른손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으나 스틸 사진은 물론 비디오 촬영까지 자기 책임을 끝가지 수행하다 변을 당했다. 유족 대표로 사고현장에 갔던 이대원의 형 정화씨는 “부모·누이에 이어 동생 시신마저 내가 거두게 돼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통곡해 주위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위의 글은 월간 중앙 WIN 98년 3월호에 실린 기사내용을 발췌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