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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1300호 지원단

이 소 희

발해1300호 지원단장


오랫동안 청소년탐사단 활동을 주도해왔던 그녀는 발해1300호 선장으로 탐사에 참여한 이덕영 선장과 1997년 여름 백두산 등정을 같이한 인연과 뗏목출항 당일 장철수 대장의 지원요청으로 엉겹결에 지원단장을 맡게 되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당시의 상황을 소상히 알고 있는 그녀. 이제 그녀는 발해1300호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고 말았다.


그녀의 현재 소망은 한점 왜곡됨이 없이 발해1300호 항해를 알리는 것, 그리고 네 분의 숭고한 뜻을 국민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재 희
한국해양대학 아마추어무선국 98년 무선국장

발해1300호 항해당시 한국해양대학 아마추어 무선국 국장. 발해1300호 출항이 몇차례 연기된 이유로(애초 11월 5일 출항예정이었다고 한다) 12월 31일 출항연락을 받지 못했다가, 이소희 단장의 연락으로 1월 2일 지원단에 합류하게 된다.

그는 역사적인 현장을 햄 장비로 교신을 하고 이것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것이 햄의 역할이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1월 18일 해경 함정으로 탐사대에 지원물품을 전달할 때 이소희 단장과 함께 승선하여 역사적 현장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었다.

이 동 규(HL2WA)

(주)아시아나항공 정보통신사업부 항공무선단체국 국장


발해1300호 항해 기간 내내 뗏목(호출 부호 HL0JQT/MM)과 주도적으로 교신하며 뗏목의 상황을 파악해 인터넷과 하이텔에 중계함으로서 뗏목의 항해상황을 알리고 뗏목과의 교신을 통해 대원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아시아나항공 항공무선단체국 국장.


그는 (사)한국아마추어연맹 기술이사를 역임할 정도로 이 방면에서는 국내의 내노라하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사고소식을 접한 98년 1월 24일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1월 23일 20:58분 순시선도착과 인양소식등 교신을 종료하고 마음을 놓았습니다...'연락이 되었습니다.(순시선) 그간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신 한국여러오엠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걱정하시 마십시요.. 인양준비를 하여야하니 이상 QRT를 합니다...감사합니다 ' 임현규 대원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제 그는 발해1300호 대원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은 역사의 증언자가 되고 말았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qsl.net/hl2wa/"

러시아 극동대학 관계자 여러분


발해1300호가 출항하기까지 국내의 그 누구도 그들의 힘든 상황에 위로나 격려를 하지 않고 외면할 때 러시아 극동대학의 아낌없는 물적 지원과 정신적 지원은 발해1300호에게 이루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도움이었다.

러시아에서 출항준비로 고생할 때 베르할략 한국어 학장이 대원들과 매일 만나 애로사항을 다독였고 실제 미화로 약 1만 5천달러 정도의 금전적 지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외에 숙식 및 차량 등을 아낌없이 지원하였으며, 사고후인 2월 21일, 극동대학의 부총장과 한국학 학장이 한국을 방문하여 장철수대장 영결식에서 장철수 대장에게 해양학 명예 박사학위 수여하여 해양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그의 공로를 인정하기도 하였다.